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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영의 장남 방상훈의 부인은 윤순명이다. 윤순명의 아버지가 윤영구다. 그러니까 방상훈의 장인이다. 윤영구의 아버지가 윤영선이다. 윤영선은 그 악명높은 윤치호의 아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방상훈의 부인 윤순명은 그 악명높은 윤치호의 증손녀다. 이런 부분은 조선일보에 전혀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방상훈의 부인 윤순명의 증조부 윤치호의 친일행위는 두말할 나위가





보면 '우리는 입을 가졌으나 생벙어리 행세를 하여야 하였으며 할 말은 많았으나 호소할 곳이 없었다. 우리는 죽으라면 말없이 죽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안될 환경에 놓여 있었다.'고 써 있다. 물론 변명과는 달리 방응모의 친일은 자기방어의 한계를 넘는 행위였다. 부패와 타락이 그 본질인 사회에서 깨끗한 사람은 좀

식도원으로 돌아다니면서 재벌과 대관 집을 찾기도 하고.. 가와시마 군사령관의 저녁초대를 받고 갔다가 돌아와서는 고사포도 기부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운영하는 월간지에 발행인 방응모의 이름으로 스스로 기고한 글을 봐도 친일파 방응모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대일본제국 2천 6백년의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의 삼촌인 방재선의 증언이다. “대통령 형님, 한잔 쭈∼욱 드십시오.” “내가 좀 과한 것 같은데….” “아니, 제가 대통령 형님 술 실력을 모르는 사람입니까?” 이런 대화가 바깥에 까지 들려서 당시 권세가 하늘을 찔렀던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밤의

손을 붙잡고 밴드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는 광란의 도가니가 펼쳐졌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술로써 맺어진 의리가 가장 끈끈하다. 명문가문 이후락 편에서 언급했듯이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극동건설의 김용산, 대농의 박용학, 한국화약의 김종희, 호남정유의 서정귀 등은

한다. 하여간 술과 여자를 매개로 한 이런 요정정치를 통해서 거대한 이권과 권력이 거래되고, 정치와 언론이 비정상적으로 유착하는 정점에 조선일보 회장 방일영이 있었다. 사주가 대통령과 술자리에서 형님, 아우하는 조선일보는 언론사에 대한 사전검열 조치가 포함된 유신쿠데타가 일어나자 서슴없이 “구국의

친일실업인 단체인 대정친목회 명의로 발행허가가 나고, 친일악덕지주 예종석을 발행인으로 하고, 친일상공인 조진태를 초대사장으로 창간되었으며(1920년), 이후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 송병준이 조선일보를 경영했던 수치스런 과거를 가지고 있는 신문이다. 이 것을 방응모가 사들여 운영한 것이다. 예종석과 조진태는 일본에 빌붙어 이권을 챙기고, 가난한 농민들에게 고율의

2018년 122건, 올해 93건으로 감소 추세다. 최근 3년간 파울볼 사고 연령별 피해자를 보면, 10대 이하(58건)와 60대 이상(11건)이 19%를 차지했다. 전희경 의원은 "야구는 가족, 어린이, 장애인, 여성 등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스포츠"라며 "관중이 많이 몰리는 장소인 만큼 구단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와 야구팬

대통령이라는 말도 사실 박정희가 방일영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 속뜻은 요정 정치에 데뷔해보니 항상 엄청난 화술과 주량으로 밤 문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방일영이라는 말이다. 박정희는 '이 세상에서 팔자 제일 좋은 사람이 방일영이다.'라면서 부러워했다고

대가로 소위 ‘언론사(주)’는 비대화하고 ‘언론인’을 자처하는 기능인들은 직장의 안과 밖에서 화려한 승진과 영달의 사다리를 달려 올라갔다. 그렇게 해서 부정한 정치권력과 타락한 언론권력은 일체화되어갔다.”(리영희, 1996.3) 방일영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 방상훈은 조선일보의 대표이사로서 현재 사주다. 숭문학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작은 아들 방용훈은 코리아나호텔 대표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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