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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추진했다. 그해 4월9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들을 사형선고 20시간 만에 사형에 처하는 등 인권탄압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위기가 커지자 6월 22일 개신교 보수세력이 중심이 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40만 명이 모여 ‘나라를 위한 기독교





통일 노력에 호응하라.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중지하고 우방으로서 신의를 지키라”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당시는 미군 철수 문제 등을 두고 논란이 이는 등 박정희 정권이 위기를 겪고 있었고, 위기의 박정희 정권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런 행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을 앞두고 한국교회총연합회는 서울





당시 조찬기도회는 공중파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고, 광주 학살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의 안정적인 통치기반의 마련을 개신교 목회자들이 도운 것이다. 당시 조찬기도회에선 ‘학살자’ 전두환을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에 비교하며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 사회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1980년 8월





것이라는 이라는 믿음은 반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선 자주 만나는 모습이다. 이런 개신교의 ‘번영신학’이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와 맞아 떨어졌다. 교회협 정의평화위원장 최형묵 목사는 “거시적으로 조명하면 정권의 비호뿐 아니라 급속한 근대화로 인한 아노미 상태,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해체된 공동체를 대신할





자주 만나는 모습이다. 이런 개신교의 ‘번영신학’이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와 맞아 떨어졌다. 교회협 정의평화위원장 최형묵 목사는 “거시적으로 조명하면 정권의 비호뿐 아니라 급속한 근대화로 인한 아노미 상태,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해체된 공동체를 대신할 곳으로 교회가 주목받은 시대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집회 성격의 행사였다. ‘구국 기도’와 ‘교회대각성’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위기에 처한 박근혜를 특면 지원하기 위한 행사였다. 그리고,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세력이 권력을 잃어버리자 문재인 정부를 공산주의 또는 악의 세력이라 주장하며 ‘구국기도회’를 빙자한 극우집회를 열고 있다. 박정희식 근대화의 논리를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체질화했던 게 개신교였다 개신교 성장의 비밀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사절단이란 이름의 특사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김활란 등 개신교계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해 쿠데타 당위성을 밝히며 설득했다. 박정희 집권 시기에 빌리 그라함 목사의 민족 대복음화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린다. 당시 김장환 목사가 통역했다. 김준곤 목사는 10월 유신 환영





당시 기도회를 보도한 6월23일자 동아일보 기사 ⓒ기타 2년 뒤인 1977년 8월에도 서울 여의도광장에선 ‘77민족복음화대성회’가 열렸다. 150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집회에선 “우리는 계속 복음화의 기수가 될 것을 다짐한다. 김일성 북한





평가가 끝난 광주항쟁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계속된다. 심지어 이런 주장이 국회에까지 등장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한국 사회의 극우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력은 바로 한국개신교다. 개신교는 지금 태극기집회 등 극우세력 활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각종 극우적 성향의 정치



아니라 종교 적산도 많았다. 그 종교 적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개신교가 차지하는 특혜를 입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개신교의 교세는 미미했다. 때문에, 일제가 남긴 개신교 관련 재산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신교는 개신교 관련 재산뿐 아니라 일본의 신흥종교로 한반도에도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던 천리교(天理敎)의 재산을 불하받는 등 특혜를 받았다. 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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